11월, 2010의 게시물 표시

요시모토 바나나의 '왕국' 순간순간 마음에 꽂히는 글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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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광경을 보면, 사진에 담고 싶듯이 멋진 글을 보면 머리에 깊게 남기고 싶어서 메모를 하게 된다. 책을 빠르게 읽는 것은 남기고 싶은 글귀가 없어서이며(뭐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책을 느리게 읽게 되는 순간들은 글귀를 되새김질 하고 싶어서이다. 읽으면서 되뇌고 싶은 글귀, 그리고 적어두고 싶은 글귀가 많았던 책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왕국'이다. 할머니와 숲에서 살던 시즈쿠이시가 도시로 나와서 가에데의 일을 도와주며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상들이 나와있는 책이다. 가꾸던 선인장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다시 선인장을 가꾸기도 하고, 또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그리고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간 중간 되뇌이던 글귀들을 남기고 싶어졌다. 삶이 어렵게 느껴질때 다아온 글귀다. "아직 도를 더 닦아야겠군. 남이 뭐라하든 각자가 마음이 정한 허들이다. 더 높이 뛰어 오르도록 하루하루를 사는 도리밖에 없다" 그래, 누구든 어려운 일이 닥친다. 그걸 어떻게 극복해가는가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몇달전에 너무나 일이 많고, 힘든 시기에 집에 가면 무의미하게 TV를 켜놓았던 적이 있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시절이다. 그때 나도 그랬다. "고작 텔레비전 같은 거에 삶이 휘둘리다니..." 고작이지만, 무언가에 휘둘리면 자신이 없어진다. 그게 TV이든 사람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 이렇게 바쁘고 쉼없이 사는 것은 쉬던 시기가 있어서 견디는 것일 거다. "지금은 힘든 시기. 그냥 멈춰서있는 시기일꺼다" 이런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잘 넘겨야 그 다음을 또 견딜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사랑의 이별을 하고 나서 느끼는 주변의 대한 말이다. "무슨 일을 해도 온 세계가 추억이란 고문으로 가득했다" 함께 했던 것들이 많을 수록 그 상황과 배경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버린다. 특정한 장소,

1등보다 훌륭하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한 2등 왕기춘 선수

2001년 여름, 프랑스에 갔을 때 사촌오빠네 집에서 '프랑스 한바퀴 돌기(투르 드 프랑스)'라는 프랑스도로일주 사이클대회를 처음 봤었습니다. 이 경기는 1년에 한번씩 열리는 경기고, 세계각지에서 선수들이 오고, 팀웍이 중요하고, 체력도 중요한 경기라고. 사이클을 타는 선수들이라 허벅지가 엄청 두꺼웠던 것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해에 누가 우승했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는데 말이죠.^^: 그때 처음 알게 된 사람이 랜스 암스트롱입니다. 지난 2003년 7월, 무적스팸( http://blog.chosun.com/chanlan/642 )에서도 썼지만, '프랑스 한바퀴 돌기'에서 암스트롱이 우승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기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암스트롱이 선두로 가다가 관중의 가방에 핸들이 걸려 넘어졌으나, 라이벌인 울리히와 다른 선수들이 속도를 늦춰서 암스트롱이 우승할 수 있도록 했다'는 글.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이 경기는 유럽 전역에서 7월 3주간 열리는 이 경기를 전 구간 생중계는 물론이고 더나아가 열성팬들은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선수들이 달리는 전 구간을 쫒아다닌다고 합니다. 이 경기는 전 세계 사이클 선수라면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우승하면 '사이클영웅'이라는 칭후가 주어지게 되는 세계 최고의 자전거 경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기에서 앞서가던 선수를 배려하는 선수들이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사에서는 2002년 대회 때, 울리히가 넘어졌을 때 암스트롱도 그가 일어나서 달릴 때 까지 속도를 늦춰줬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실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순간을 기다려주는 그런 멋진 스포츠정신이 느껴졌던 이야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멋질 수가 있습니까… 스포츠를 즐기고, 자신을 자제해서 경쟁자도 당당하게 승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한참을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1등보다 훌륭하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한 2등 왕기춘 선수

2001년 여름, 프랑스에 갔을 때 사촌오빠네 집에서 '프랑스 한바퀴 돌기(투르 드 프랑스)'라는 프랑스도로일주 사이클대회를 처음 봤었습니다. 이 경기는 1년에 한번씩 열리는 경기고, 세계각지에서 선수들이 오고, 팀웍이 중요하고, 체력도 중요한 경기라고. 사이클을 타는 선수들이라 허벅지가 엄청 두꺼웠던 것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해에 누가 우승했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는데 말이죠.^^: 그때 처음 알게 된 사람이 랜스 암스트롱입니다. 지난 2003년 7월, 무적스팸( http://blog.chosun.com/chanlan/642 )에서도 썼지만, '프랑스 한바퀴 돌기'에서 암스트롱이 우승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기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암스트롱이 선두로 가다가 관중의 가방에 핸들이 걸려 넘어졌으나, 라이벌인 울리히와 다른 선수들이 속도를 늦춰서 암스트롱이 우승할 수 있도록 했다'는 글.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이 경기는 유럽 전역에서 7월 3주간 열리는 이 경기를 전 구간 생중계는 물론이고 더나아가 열성팬들은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선수들이 달리는 전 구간을 쫒아다닌다고 합니다. 이 경기는 전 세계 사이클 선수라면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우승하면 '사이클영웅'이라는 칭후가 주어지게 되는 세계 최고의 자전거 경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기에서 앞서가던 선수를 배려하는 선수들이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사에서는 2002년 대회 때, 울리히가 넘어졌을 때 암스트롱도 그가 일어나서 달릴 때 까지 속도를 늦춰줬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실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순간을 기다려주는 그런 멋진 스포츠정신이 느껴졌던 이야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멋질 수가 있습니까… 스포츠를 즐기고, 자신을 자제해서 경쟁자도 당당하게 승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가

애플, 음악을 사랑하다, 비틀즈를 사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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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7 어제 후배가 보여준 애플의 사이트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어떤 제품을 내놓기 위해 이렇게 홈페이지에 결코 잊지 못할 것을 보여준다고 공지를 하나 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부터 흘러나왔던, 그리고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는 '비틀즈'였다. 아이툰에서 이제 비틀즈의 전곡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은 앨범 또는 싱글 단위로 비틀즈 음원을 판매하며, 가격은 앨범이 12.99달러, 싱글이 1.29달러. 말도 많았던 비틀즈의 저작권을 갖고 있던 애플콥스와의 관계가 해결된 것이다. 광고를 보면 더 감동적이다. 음악을 아이툰에서 사야만 하는 의무감이 생기는 듯하다. 비틀즈를 사랑하는 애플, 음악을 사랑하는 애플이라면 그곳에서 같이 음악을 나눠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케팅이겠지만, 그래도 이건 회사의 이념이 멋지다는 것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틀즈의 음악을 디지틀로 기다렸던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주는 애플이 되버렸다. 벌써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느낌. 이렇게 멋진 마케팅에 갈채를 보낸다. 멋지다, 애플! 광고는 비틀즈의 대표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함께 나누고자 한다. 시작은 비틀즈를 소개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듣기만 해도 추억이 떠오르는 Yesterday.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곡 All I need is love... 어코스틱 기타를 배우게 만들었던 곡 'Let it be' 그리고 그들의 영상... 비틀즈를 사랑하는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저작권이 지켜진 음원판매하는 애플이 희망이다. 우리도 그들의 소중한 음악을 지켜주고 싶다.

애플, 음악을 사랑하다, 비틀즈를 사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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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7 어제 후배가 보여준 애플의 사이트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어떤 제품을 내놓기 위해 이렇게 홈페이지에 결코 잊지 못할 것을 보여준다고 공지를 하나 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부터 흘러나왔던, 그리고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는 '비틀즈'였다. 아이툰에서 이제 비틀즈의 전곡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은 앨범 또는 싱글 단위로 비틀즈 음원을 판매하며, 가격은 앨범이 12.99달러, 싱글이 1.29달러. 말도 많았던 비틀즈의 저작권을 갖고 있던 애플콥스와의 관계가 해결된 것이다. 광고를 보면 더 감동적이다. 음악을 아이툰에서 사야만 하는 의무감이 생기는 듯하다. 비틀즈를 사랑하는 애플, 음악을 사랑하는 애플이라면 그곳에서 같이 음악을 나눠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케팅이겠지만, 그래도 이건 회사의 이념이 멋지다는 것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틀즈의 음악을 디지틀로 기다렸던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주는 애플이 되버렸다. 벌써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느낌. 이렇게 멋진 마케팅에 갈채를 보낸다. 멋지다, 애플! 광고는 비틀즈의 대표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함께 나누고자 한다. 시작은 비틀즈를 소개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듣기만 해도 추억이 떠오르는 Yesterday.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곡 All I need is love... 어코스틱 기타를 배우게 만들었던 곡 'Let it be' 그리고 그들의 영상... 비틀즈를 사랑하는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저작권이 지켜진 음원판매하는 애플이 희망이다. 우리도 그들의 소중한 음악을 지켜주고 싶다.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 다른 사람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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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전을 짧게 요약한 '명작 다이제스트-죄와 벌'을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말이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살해를 하러 가는 장면은 기억이 그래도 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살해장면이 1장에 끝난다. -.-;; http://www.textore.com/web/display/getDisplayEbookDtl.do?prdCode=PRD1045863 뭔가 풍부한 묘사와 상황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은 권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더듬고 싶다면 추천. 주제랄까 하는 건, 인간이 겪는 갈등과 가치관의 혼란을 '살인'이라는 소재를 빌려 나타내는 작품이라는 거다.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살인을 당한 전당포 노파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그 노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건과 돈을 뺏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학생인 그는 극단적인 사상, 즉 선택된 강자는 인류를 위해 도덕성을 넘어서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자신의 범죄 행위를 타당하게 바꾸려는 합리화를 한다. 노파를 악인으로 치부했던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러나 같은 인간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을까 싶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종종 우리는 타인을 힘들게 하고 부당하게 이익을 챙기고, 뭐라 할 수 없게 얄미운 사람들은 벌을 받길 기도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자기 자신이 직접 그 죄를 정죄하는 것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정죄를 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자신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범죄로 인한 고통은 자신에게도 큰 괴로움을 주게 되기에 쉽지 않은 길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개인이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세상이 아는 아주 나쁜 사람이라면 누군가 그에 맞는 벌(!)을 내리게 될테니까.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도... 다른 사람의 불행을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 다른 사람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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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전을 짧게 요약한 '명작 다이제스트-죄와 벌'을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말이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살해를 하러 가는 장면은 기억이 그래도 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살해장면이 1장에 끝난다. -.-;; http://www.textore.com/web/display/getDisplayEbookDtl.do?prdCode=PRD1045863 뭔가 풍부한 묘사와 상황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은 권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더듬고 싶다면 추천. 주제랄까 하는 건, 인간이 겪는 갈등과 가치관의 혼란을 '살인'이라는 소재를 빌려 나타내는 작품이라는 거다.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살인을 당한 전당포 노파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그 노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건과 돈을 뺏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학생인 그는 극단적인 사상, 즉 선택된 강자는 인류를 위해 도덕성을 넘어서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자신의 범죄 행위를 타당하게 바꾸려는 합리화를 한다. 노파를 악인으로 치부했던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러나 같은 인간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을까 싶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종종 우리는 타인을 힘들게 하고 부당하게 이익을 챙기고, 뭐라 할 수 없게 얄미운 사람들은 벌을 받길 기도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자기 자신이 직접 그 죄를 정죄하는 것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정죄를 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자신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범죄로 인한 고통은 자신에게도 큰 괴로움을 주게 되기에 쉽지 않은 길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개인이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세상이 아는 아주 나쁜 사람이라면 누군가 그에 맞는 벌(!)을 내리게 될테니까.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도... 다른 사람의 불행을

'지성에서 영성으로' 갈급(!)함이 엄습해올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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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들에 밀려 다 읽지 못했던 이어령교수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마무리했다.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그분이 종교를 갖게 된 계기와 기타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분이 그러셨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쓰는 사람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글도 바뀌고 글이 바뀌면 내 생각의 세계도 업그레이드 됩니다... ... 지성의 레벨에서 나오는 소리와 영성의 소리에서 나오는 글은 다릅니다..." 안에서 생각이 넘쳐나서 그것을 주체할 수 없어, 분출되면 그것을 쏟아내는 것이 예술적인 것이 된다. '글'일수도 있고, '그림'일수도 있고, '음악'일수도 있고... 그런 결과물을 낼 수 있을때 우리는 갈급한 느낌을 받진 않는다. 그런 분출이 많을 때는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공허함이 엄습해오는 순간. 이어령교수가 말했듯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노래를 불러도 가슴이 풀리지 않고, 여행을 해도 또 무언가 보고 싶고, 시끌벅적한 모임에 가도 허전하고, 사랑을 만나도 외로울 때... 이렇게, 무엇을 해도 계속 무언가 갈급할때가 있다... ( 이교수님은 책에서 그럴때 '우리는 교회에 간다'라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나도 공감. ^^: )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 즉 영혼이라는 것이 목마름을 느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 않는한 사람은 삶을 계속 해나가기 어렵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 내적인 갈급함을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종교의 힘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개인적으로는 종교의 힘이 가장 강력한 것을 알지만, 배타적인 무신론자들은 동의하지 않을테니,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길 바란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갈급의 종말은 긍정적인 것이 없으니까... 종말이 타락인가? -.-;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이 어제 나에게 준 따뜻한 영혼의 채움에 감사

'지성에서 영성으로' 갈급(!)함이 엄습해올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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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들에 밀려 다 읽지 못했던 이어령교수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마무리했다.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그분이 종교를 갖게 된 계기와 기타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분이 그러셨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쓰는 사람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글도 바뀌고 글이 바뀌면 내 생각의 세계도 업그레이드 됩니다... ... 지성의 레벨에서 나오는 소리와 영성의 소리에서 나오는 글은 다릅니다..." 안에서 생각이 넘쳐나서 그것을 주체할 수 없어, 분출되면 그것을 쏟아내는 것이 예술적인 것이 된다. '글'일수도 있고, '그림'일수도 있고, '음악'일수도 있고... 그런 결과물을 낼 수 있을때 우리는 갈급한 느낌을 받진 않는다. 그런 분출이 많을 때는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공허함이 엄습해오는 순간. 이어령교수가 말했듯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노래를 불러도 가슴이 풀리지 않고, 여행을 해도 또 무언가 보고 싶고, 시끌벅적한 모임에 가도 허전하고, 사랑을 만나도 외로울 때... 이렇게, 무엇을 해도 계속 무언가 갈급할때가 있다... ( 이교수님은 책에서 그럴때 '우리는 교회에 간다'라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나도 공감. ^^: )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 즉 영혼이라는 것이 목마름을 느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 않는한 사람은 삶을 계속 해나가기 어렵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 내적인 갈급함을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종교의 힘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개인적으로는 종교의 힘이 가장 강력한 것을 알지만, 배타적인 무신론자들은 동의하지 않을테니,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길 바란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갈급의 종말은 긍정적인 것이 없으니까... 종말이 타락인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