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피는 꽃, '가지말라고' 진주
겨울에 피는 꽃 (1) 일자리를 일어 버린후, 재호는 몸과 마음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아이에게 먹일 분유값이 없어 애가탓다. 친지와 친구들에게도 여러차례 도움을 받아 더 이상은 도움을 청할 염치도 없었다. 오늘도 재호는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집을 나섰다. 퀴퀴한 냄새 가득한 골목길에는 깨어진 연탄재만 을씨년스럽게 날렸고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써 놓은 담벼락 낙서 위로 겨울 햇살이 한나절 둥지를 틀었다. 무거운 하루를 또다시 등에 이고 돌아오는 길에 재호는 문득 고등학교 동창인 성훈이 생각났다. 성훈이라면 자신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재호는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성훈이 오래 전부터 가난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재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친구가 무척 보고 싶었다. 재호는 가파른 목조 계단을 올라 성훈의 화실이 있는 복도로 들어섰다. 그때 중년의 남자가 종이로 포장된 그림을 들고 계단 쪽으로 걸어 나왔다. 화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성훈은 재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겨울에도 화실의 난로는 꺼져 있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있는 성훈의 얼굴도 까칠해 보였다. "손님이 왔는데 화실이 추워서 어쩌냐?" "내가 뭐, 손님이냐. 춥지도 않은데, 뭐." 재호는 미안해 하는 성훈 때문에 일부러 외투까지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내가 빨리 나가서 라면이라도 사 올게. 잠깐만 기다려." 성훈이 나간 동안 재호는 화실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벽에 붙은 그림 속에는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어둠 속에 귀가하는 도시빈민이 있었다. 자신을 닮은 그 지친 발걸음을 재호는 한참동안 바라 보았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재호는 몇번을 망설였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재호는 옷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