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이첵(Paycheck, 2003)' 미칠 것 같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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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 못하는 인간은 지난 과거의 특정부분만 기억하고 그 외의 부분들은 기억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기억을 잡기 위해 인위적인 행동으로 일기도 쓰고, 사진도 찍는 행동으로 조금 더 과거의 기억을 연장해 보려고 하지만 결국 다 잡아두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것은 그렇게 잡아두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추억들로 삶을 행복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슴저린 아픈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아픈 기억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과거의 기억 한 부분은 삭제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순간 아니면, 몇 년간의 기억을 말입니다. 이런 ‘기억제거 프로그램’을 오우삼 감독의 영화 <페이첵>에서 만났습니다. 하이테크 기업의 천재 분해공학자 마이클(벤 애플릭)은 일급기밀만을 다루는 기업기밀 보완정책에 따라 단기 프로젝트가 끝날 때 마다 ‘기억제거 프로그램’에 의해 기억이 제거 됩니다. 그러던 중 마이클은 회사로부터 3년간의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엄청난 보수를 받기로 합니다. 단, 3년간의 모든 기억은 삭제되는 조건입니다. 지금부터 3년간 무슨 일을 하든 기억에서 지워지는 일에 착수한다는 것은 몇 달의 프로젝트 처럼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니죠. 그래도 세상은 3년 만에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마이클은 그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3년의 프로젝트를 마친 마이클은 자신의 엄청난 보수 대신에 영문 모를 19개의 물건이 담긴 봉투를 받게 됩니다. 자신이 엄청난 보수를 포기했다는 얘기와 함께 말입니다. 단서들로 기억이 지워지기 전의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찾아야만 하는 마이클. 지워진 기억 속의 연인 레이첼(우마 서먼)은 그런 마이클을 도와 남은 19개의 단서들로 전하고자는 메시지를 찾아나섭니다. 마이클은 기억을 찾고 싶어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엄청난 돈 대신에 이런 단서들과 자신을 쫓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것인지…

이성재, 송승헌, 김하늘 주연 영화 '빙우(氷雨, Ice Rain, 2003)' 불륜이 아름다울 수 없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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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그녀는 누군가를 닮았어.. 내가 사랑하던 누군가를...”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겨울에 서울엔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군요. 2001년 겨울인가는 정말 많은 눈이 내렸던 겨울이였는데... 올해는 눈이 안오는 겨울인가 봅니다. 그래서, 눈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빙산이 배경인 영화 <빙우>를 보러 갔습니다. 전체적 줄거리 그러니까, 대학생 동아리에서 알게 된 유부남 선배 강중현(이성재)을 사랑하는 여대생 김경민(김하늘)과 그녀를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한우성(송승헌)의 사랑이야기로 이루어진다는 설정이 절대 맘에 들지 않는대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강중현과 한우성은 알래스카 아시아크의 등반을 위한 원정모임에서 만납니다. 등반을 하면서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던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원하는 만큼 다가갈 수 없었던 강중현과 다가가려 하지만 그 여인이 다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한우성. 그들은 서로를 더 부러워했을지 모릅니다. 강중현은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한우성을, 한우성은 그녀의 사랑을 받는 강중현을… 영화 속에서는 어떤 ‘불륜’이라는 시각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사랑이 더 절절한 듯, 그들의 사랑표현에 대해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강중현이 손을 화로에 넣게 되고, 김경민이 자신의 루프를 끊게 되는 장면을 통해서 말입니다. (자세한 상황은 영화보실 분들을 위해 살짝 뺐습니다.) 전체적으로 평이한 영화에 반하는 장면들이기도 합니다. 3 사람의 사랑은 너무 객관적으로만 보입니다. 그들이 만나게 되는 것부터 사랑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관객인 제가 감정을 이입시킬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더군요. 영화의 자막이 올라갈 때 생각나는 건 빙산뿐 이였습니다. 목적이야 정말 눈을 보러 간거였지만, 너무나 목적만 달성시킨 영화가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어쨌든, 영화는 그냥 평이한 어떤 불륜을 포함한 3각 관계정도 였습니다. 어쩌면 드라마

영화 '브라더 베어(Brother Bear, 2003)' 입장 바꿔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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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말에 ‘易地思之(역지사지)’란 말이 있습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말. 나이가 들면 들수록 머리 속으로 아는 이론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집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행동에서 그런 이론들을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명 ‘습관’이라는 위대한(!) 힘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아니면 뭔가를 잘하기 위한 방법들을 정말 수도 없이 많이 듣고, 그것들을 이미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배려해 주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서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남을 이해하는 것을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남이 되어 생활해 본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요? 영화 <브라더 베어>를 보면서 상대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느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키나이가 자신의 형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곰을 죽이는 순간 자신이 곰으로 변해서 그 당시의 상황을 깨닫게 되고, 곰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에선 이 영화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란 생각까지 들었으니까요. 우리가 평소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노력’에 의해서 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 사람의 입장이 된다면 그것은 노력도 필요치 않고, 그냥 살아가는 삶을 통하여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밖에 없어지겠죠. 영화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조차 거부하고, 타인을 괴롭히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렇게 계속 살다가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영화에서처럼 말입니다. 새로 시작되는 2004년에는 자신의 입장도 중

한국 영화 '실미도(Silmido, 2003)' 살아남은 자의 잔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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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말 강우석 감독의 대작 <실미도>를 보고 나서… 뭐라고 할말을 잃게 했던 영화이기에,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못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너무 멋지게 만든 영화다.’라는 한마디로 끝냈던…) 사형집행대신 군인이 된 범법자들은 김일성 목을 가져오면 국가의 공로자로 모든 죄를 사해줄 뿐 아니라 돈도 주고, 명예도 준다는 사실에 자신의 목숨을 건 혹독한 훈련을 시작합니다. 사회에서 버려졌던 그들. 그러나 임무만 완수하면, 자신들도 이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희망을 간직한 채, 훈련 없는 실전훈련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남북 회담이 개최되고 ‘평화통일’로 국가의 정책이 전환되면서 훈련 받았던 31명의 북파공작원들은 제거되어야 하는 군인들로 탈바꿈 합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남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 그들은 실미도를 벗어나기 위해,자신들을 지금껏 혹독하게나마, 돌봐줬던 상사들과의 전투를 치뤄야만 합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 영화 속에서는 타인을 죽이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무참하게 죽이는 사람, 함께 살수 있길 바라며 차마 죽이지 못하는 사람 등 극으로 몰렸을 때의 사람의 심리를 다양한 형태로 표현합니다. 영화는 과거의 시간 속에 흐르고 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저는 현실에서 가끔씩 직면하는 삶의 상황 속에서 영화를 흘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친구를 또는 동료를 눌러야만 하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피해보려고 하지만, 사실 그런 상황은 선택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기에 의지에 의해 어떻게 막을 수가 없습니다. 경기가 어렵거나,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엔, 이런 일들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인간의 본성이 생존이기에…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면, 선택은 바로 자신이 살기 위한 선택으로 자연히 바뀌게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2(Odoru Daisosasen 2: Bayside Shakedown 2, 踊る大搜査線 The Movie2, 2003)'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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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조직에 속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조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일들은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의해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크게 눈에 띄는 일들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하고 있기에 문제없이 조직이 운영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조직이 운영되는 데는 하찮은 일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본 '춤추는 대수사선2'를 보면서 더욱더 조직의 모든 일이, 그리고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광안내 등 단순 업무로 바쁜 완간 경찰서에 가족 소매치기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고, 여고생의 목을 뒤에서 무는 변태 사건이 일어납니다. 거기에 더해 엽기적인 살인 사건까지 일어납니다. 좀 화끈한 사건을 찾던 완간 경찰서의 아오시마(오다 유지)는 살인사건이 바로 자신이 찾던 사건이란 생각으로 현장으로 뛰어갑니다. 그러나, 본청에서 특별수사본부를 파견하면서 관할서의 경찰들은 본청의 명령대로만 현장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사건의 실마리도 없이 두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살인 목격자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 나간 아오시마와 스미레(후카츠 에리)는 현장에서 소매치기 가족과 여학생을 따라가는 변태 용의자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본청의 지시대로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절대 움직이지 말고 살인 목격자를 보호하라고만 본청의 지시 때문에 그들은 결국 범법자들을 놓치고 맙니다. 본청에서는 관할서내의 일은 하찮은 일이니, 본청의 업무에만 협조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은.. 안 해도 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그런 일들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관할서내의 경찰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해왔던 일들이 가치 없는 일인 듯한 실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관할서내의 문제까지 늘어나는 상황으로 몰린 본청에서는 리더를 바꾸어 문제해결을 다시 시도합니다. 순간순간 명령을 했던 과거의 리더와는 달리 새로운 리더 무로이(야나기바 토시로)는 ‘현장에

영화 '바람의 검:신선조(壬生義士傳: When The Last Sword Is Drawn)' 살아남기 위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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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를 보는 데 이라크 파견근무 나갔다 사망한 기업체 직원 2명의 가족들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영화 ‘바람의 검:신선조’가 떠올랐습니다. 남부 번(藩, 에도시대 다이묘가 다스렸던 영지, 주민, 통치기구의 총칭)의 하급무사지만 교관으로서 아이들에게 무도를 가르치는 칸이치로(나카이 키이치)는 뛰어난 무술을 소유하고 뛰어난 도를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이였습니다. 어느날, 칸이치로는 자신이 살던 번을 벗어나 교토의 한 구석 미부(壬生)에서 탄생된 신선조(新選組)(수도의 치안을 담당한 국가경찰조직)에 입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칸이치로는 자신의 뛰어난 무술과 도를 내세우기 보다 수전노 같이 무슨 일이든 돈으로 보상만 받으려고 합니다. 무도를 중시하던 칸이치로가 그렇게 변한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그것은 배를 굶주리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중시하는 의를 지키려다 사랑하는 아들을 몸종으로 보내거나, 사랑하는 아내를 잃을 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무술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들의 굶주림을 극복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의를 저버리고 가족을 위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신선조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는 주변에서 그를 비웃어도 돈만 주면 행복했습니다.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날들을 꿈꾸는 그에게는 그런 비웃음은 아무것도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남을 죽이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아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칼을 잡았습니다. 영화는 줄거리를 보시면 자세히 아실 수 있을 실 테고요. (그래도, 결국 의를 지키는 칸이치로의 모습에서 어쩌면 더 뭉클한 감동이 오는 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뉴스에서 본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40년간 송전탑 일을 하시고, 고향에 집을 마련한지 1년이 채 안되시는, ‘먹고 살만하니 위험한 곳에 가시지 말라’는 가족들의 만류에 ‘전쟁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걱정 말라, 일거리가 없던 차에 운이 좋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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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무적스팸은 좀 일찍 찾아왔습니다. 사랑에 아파하시는 분들이 많은 듯, 게시판에 너무 아픈 사랑이야기가 많아서 스팸쥔장으로서 뭔가를 해야할 것 만 같은 의무감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해볼까 해서요. 사실 어떤 이의 말처럼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긴 하지만요. ^^;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증오와 탐욕으로 가득찬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찬 곳이다” 며칠 전에 본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영화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말입니다. 영화에서는 이 말을 깨우쳐주는 듯,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혼의 핸섬한 수상과 욕 잘하는(!) 엉뚱한 비서, 엄마를 잃은 아들과 그를 돌봐야 하는 새아빠, 학교에서 인기 많은 여자애를 좋아하는 꼬마, 비서의 유혹에 넘어갈 듯 말 듯한 사장, 바람둥이 여자친구에게 상처 받은 작가,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작가와 함께 있고 싶은 포르투갈 여인, 2년 넘게 회사 동료를 짝사랑만 하고 있는 여인, 어렵게 리메이크 음반을 낸 록스타와 매니저, 친구의 신부를 짝사랑하는 남자 이야기까지… 정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사랑이야기였습니다. 아픈 사랑이야기를 많이 접해서 인지, 경험해서 인지… 영화가 끝나고도 잊을 수 없는 것 하나는 새아빠와 아들의 대화였습니다. 아들이 매일 뭔가 고민하는 듯하여 새아빠가 고민을 물어봅니다. 아들은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는데, 아무런 고백도 못하고 있어서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새아빠는 그 정도 고통은 별거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들은 정색을 하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사랑의 고통이에요’라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치료 방법에 해답도 없고, 당시에도 가장 아프지만, 나중에도 또 아픈 그런 고통이니까요.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도 하지만, 시간으로 해결 안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