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폰부스(Phone Booth, 2002)'죽기 싫으면, 진실을 밝힐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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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주변 분들과 전화나 메일도 보내며, 소식을 전하고 지내셨나요? 바쁘다고 또, 연락도 안하고 지내시고 계신가요? 우린 Email이란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것도 버거워 연락도 못하고 지냅니다. 더 나아가 간편한 휴대폰이란 것도 있는데 말입니다. 전화를 걸면 누굴 바꿔 달라고 안해도 되고, 시간이 늦거나 이르거나 상관없이 바로 본인이 받을 수 있는 휴대폰. 그러나, 전화하는 상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다르게 표현하거나, 상황을 다르게 알려줘 악용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죠. 받기 싫은 전화가 오면 바쁘다거나, 아니면, 잘 안들린다고 하거나… 정말 바쁘거나 안들릴 때도 있지만요. 영화 '폰부스(Phone Booth, 2003)'에선 이런 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신문사나 방송사 등에 정보를 보내고 조작해,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스타로 만드는 미디어 에이전트 스투(콜린 파렐)가 등장합니다. 수많은 거짓들로 이루어진 그의 전화 통화를 보고 듣고, 있노라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가 전화를 통해 하는 일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 나고 있는 일들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휴대폰을 이용해 자신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그가 자신의 좀더 깊은(!) 사생활을 위해 공중전화를 이용합니다. 자신의 사생활이 휴대폰을 통해 가려지기도 하지만, 휴대폰이 완벽하게 사생활을 보장해 주지 않으니까요. 발신자 확인이나, 통화내역 조회 등을 할 경우에 말입니다. 그런데, 스투는 자신의 외도를 감추기 위해 사용하게 되었던 공중전화로 인해 그 자신의 외도 뿐 아니라 삶의 모든 거짓들이 파헤쳐지는 일을 겪게 됩니다. 만약 주인공 스투처럼 자신의 거짓을 다 알려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죽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요? 자세한 심리에 대한 부분은 영화를 보는 동안 소름끼치게 느껴집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거짓말을 하며, 다른 사람을 의식해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한국영화 '튜브(Tube, 2003)'달콤한 기억 하나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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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잠시 시외로 나갔었습니다.  섬이라 하기엔 너무도 큰 강화도에 갔었죠.(섬에 무슨 산이 그리도 많은지.. )  아침 일찍 조각공원에 도착했는데, 아침 공기가 서울과는 정말 다르더군요.  얼마 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이던지.. 한적한 시골로 MT나 혹은 수련회를 가서 새벽에 일어나 약간 안개가 낀 풍경 속으로 아침 산책을 할 때의 그 느낌.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 향기와 신선함 속에 아직도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들…  우리는 현실에 얽매여 살다가도 어떤 계기가 되면, 과거의 추억들이 순간 떠오릅니다. 강화도에서 그 아침의 상쾌함에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듯이… 더 나아가서 그런 짧은 순간이 아니라 누군가와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추억들로 이루어진 기억이라면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옆에 있건 없건, 특별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계속 떠오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기쁨보다 아픈 기억이 더 오래 가는 것 같지만… 그런 기억 속에선 쉽게 벗어나기도 힘이 듭니다. 영화 <튜브>에 나오는 형사 장도준(김석훈)도 아픈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테러범 강기택(박상민)에 의해 여자친구가 죽고, 자신의 새끼 손가락까지 잘려나갔으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겠죠. 그래서 그은 자신의 달콤한 기억들을 송두리째 앗아간 강기택을 잡는데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그는 담배를 꺼내 물때마다 기억 속에서 여자친구의 말을 떠올립니다. '내가 불을 붙여주기 전에는 담배 피지 말아요…' 그 말을 떠올리며, 불 붙이지도 않을 담배를 종종 입에 뭅니다. 꼭 담배를 물면 여자친구가 나타나 불을 붙여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였을까요? 영화를 보는 동안, 반복되어 귀에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사는 게 별건가.. 달콤한 기억 하나면 되지…" 산다는 건 어떻게 보면, 과거의 달콤한 기억 하나만으로 현실의 힘든 모든 것을 이겨내며 살아가

故장국영(张国荣) 주연의 '이도공간(異度空間: Inner Senses, 2002)' 슬픈 원혼을 향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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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있는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자신이 더 강해지기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자신을 좌절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충격으로 다가왔던 장국영의 자살사건. 제가 중학교 시절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멋질 수가 있나…’하며 <영웅본색>을 본 후 처음 연예인이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한국을 아니, 아시아를 움직일 만큼 인기가 높았던 그가, 어떤 이유로 자신을 버리게 되었는지, 아직도 너무 궁금합니다. 타살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말 자살한 것이라면 장국영은 자신에게 온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그것을 피하고자 죽음을 선택한 것이겠죠. 너무 이론적인 말이지만, 고통은 피하라고 오는 것이 아니고, 극복하라고 오는 건데 말입니다. 장국영의 유작 <이도공간(異度空間: Inner Senses, 2002)>을 보면, 과거의 아픔을 안은 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과거의 고통으로 삶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꼭 ‘장국영의 자살 전의 심정이 아니였을까…’하는 상상을 유도하는 소름이 끼치는 영화. 남자 친구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친구를 만난 충격에 벗어나지 못하는 얀(임가흔)과 자신을 알아달라고 했던 여자친구를 돌보지 못하고, 자살하도록 내버려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짐(장국영). 고통을 피하기만 하여 결국 환상을 보고, 환상 속을 벗어나지 못해 현실에 적응 못하는 그들. 그러나 그들은 용기를 내서 자신들의 고통을 극복합니다. 자신을 버린 남자친구를 보고도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할 정도가 되는 얀과, 자살한 여자친구의 혼을 보며, ‘나도 너를 따라갈게’라고 그녀를 사랑했노라 고백하며 피하지 않고 귀신에게 다가가는 짐.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는 너무 많은 얘기를 들려드린 것 같아 죄송하지만, 내용을 알고 봐도 영화 속의 고통을 보며, 자신의 과거 고통을 회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 주연 영화 '매트릭스2 리로디드(The Matrix Reloaded, 2003)'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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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더군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 스팸에 '디아워스'를 보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경우와 자신을 위해 사는 경우로 단순하게 구분해서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 군요.) 이런 생각을 하게 한 건 얼마 전 보았던 영화 '매트릭스2 리로디드(The Matrix Reloaded, 2003)'때문이였습니다. 시스템(세상)을 만든 창조자는 프로그램(사람이나 기계)을 통하여 시스템을 제대로 굴러가길 원합니다. 즉, 처음에 주어진 역할 만에 충실하길 바라죠. 불량한 프로그램들은 삭제하기도 하고,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들은 다시 업그레이드 시키기도 하면서. 그러나 삭제되지 않은 파일 바이러스들이 무단 복제를 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 영화에선 컴퓨터의 프로그램처럼 정말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너무도 충실해서 자신의 존재 이유는 단지 어떤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서라든지, 아니면, 어디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연결책의 역할만은 담당합니다.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역할을 끝냈으니 죽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지겠끔... 정말 단순하죠? 그러나 그런 단순함이 아닌 복잡한 감정들을 갖은 사람들에 의해서 세계는 변화됩니다. 나중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기서 나오는 그런 프로그램과 파일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사는 세상이 생각났습니다.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혀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삶을 결정하는 건 결국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생각이듭니다. 항상 선택의 순간이 오고, 그것을 결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니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 거죠. 영화 속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생각하며 세상을 바꾸는 선택하듯 말입니다. 어떤 일을 선택하고, 누구를 선택하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납니다. 오늘은 무엇을 선택했으며, 내일은 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amzgrace74님이

줄리안 무어(Julianne Moore) 주연 영화 '파 프롬 헤븐(Far From Heaven, 2002)' 여자가 남자를 떠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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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하다가, 팔과 다리에 크나큰 영광의 상처를 얻었습니다. 지금도 아파서 고생 중입니다. 어릴 적에는 많이도 넘어졌었는데, 이렇게 나이들어서(!) 넘어져 다쳐보긴 처음입니다. 어릴 적에는 피가나면, 무조건 울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피가나도 울지 않으니 얼마나 대견합니까! ^^;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서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기에 울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픔이 그전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것도 같기도 하네요. (아프긴 한데.. ) 어떤 아픔이 가장 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얼마 전 2번이나 봤던 영화 <파 프롬 헤븐(Far from heaven)>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영화 속에서 삶에 크나큰 변화와 아픔을 맞게 되는 여인 캐시(줄리안 무어)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견뎌내는 사랑도 봤습니다.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집, 잘 나가는 남편을 갖고 있어 남들이 너무도 부러워하는 미인 캐시(줄리안 무어 Julianne Moore)에게 하루 아침에 남편이 동성애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집니다. 남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남편은 그녀를 거부합니다. 그때 그녀에게 또 다른 세계를 가진 레이몬드(데니스 헤이스버트)가 등장합니다. 그는 그녀의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이며, 흑인입니다. 1950년대 그 지역에서는 흑인과의 대화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레이몬드에게 고백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털어놓으면 좀 편안해 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러나 그런 가슴 깊은 곳의 아픔을 얘기하게 되면 결코 남이 될 수 없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픔은 또 다른 사랑으로 극복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보통 몸이 아픈 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안아픈데, 마음이 아픈 건 시간이 지나도 생각나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영화 '집으로...'(The Way Home, 2002) 할머니와 빨간스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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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이 배고프다는 말 만큼 흔해진 시대가 됐지만 영화 ‘집으로…’ 에서는 ‘사랑’이라는 말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주인공 역시 사랑을 얘기하기엔 어울리지 않을 듯한 할머니와 손자... 서울에서 온 일곱살짜리 손자 상우와 산속 시골에 사는 일흔 일곱살의 외할머니가 주인공이니까요. 심지어 할머니는 말을 못하는 ‘벙어리’입니다. 하지만 ‘집으로…’ 는 ‘사랑한다’ 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고도, 마음 한구석을 일렁이게 하는 깊고 조용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상우의 외할머니는 우리네 할머니들이 다 그렇듯 ‘사랑한다’는 말을 ‘미안하다’고 합니다. 말 못하는 상우 할머니에게는 ‘미안하다’가 가슴 언저리를 문지르는 것이고요. 철없는 상우가 “게임기 배터리 사게 돈 줘!”하고 떼를 쓸 때도, 닭백숙을 걷어차며 “누가 물에 빠뜨린 닭 달랬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달란 말야!”하며 울 때도, 할머니는 가슴을 문지르기만 합니다.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잠시 맡긴 상우는 '도시’를 상징하지요. 상우는 할머니가 손으로 찢어주는 배추 김치 대신 스팸만 먹고, 물 대신 콜라를 마십니다. 반면 외할머니는 ‘자연’을 나타내지요. 한데, 왜 친할머니가 아닌 외할머니일까요? 같은 할머니지만, 아마 ‘아빠의 엄마’인 친할머니에게서 왠지 당당함을 엿볼 수 있다면,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에게서는 겸손하면서도 꿋꿋함이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도시 문명을 끌어안는 대자연의 힘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그리고자한 이정향 감독이 외할머니를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겠지요. ‘집으로…’는 그동안 잊고 지낸 소중한 사실들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시골 변소가 무서운 어린 손자를 위해 요강 속까지 닦는 외할머니의 거칠고 마디 굵은 손이 얼마나 곱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도요. 영화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요. “비현실적이야.요즘 저런 할머니가 어딨어.” “자

겨울에 피는 꽃, '가지말라고'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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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피는 꽃 (1) 일자리를 일어 버린후, 재호는 몸과 마음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아이에게 먹일 분유값이 없어 애가탓다. 친지와 친구들에게도 여러차례 도움을 받아 더 이상은 도움을 청할 염치도 없었다. 오늘도 재호는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집을 나섰다. 퀴퀴한 냄새 가득한 골목길에는 깨어진 연탄재만 을씨년스럽게 날렸고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써 놓은 담벼락 낙서 위로 겨울 햇살이 한나절 둥지를 틀었다. 무거운 하루를 또다시 등에 이고 돌아오는 길에 재호는 문득 고등학교 동창인 성훈이 생각났다. 성훈이라면 자신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재호는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성훈이 오래 전부터 가난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재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친구가 무척 보고 싶었다. 재호는 가파른 목조 계단을 올라 성훈의 화실이 있는 복도로 들어섰다. 그때 중년의 남자가  종이로 포장된 그림을 들고 계단 쪽으로 걸어 나왔다. 화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성훈은 재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겨울에도 화실의 난로는 꺼져 있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있는 성훈의 얼굴도 까칠해 보였다. "손님이 왔는데 화실이 추워서 어쩌냐?" "내가 뭐, 손님이냐. 춥지도 않은데, 뭐." 재호는 미안해 하는 성훈 때문에 일부러 외투까지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내가 빨리 나가서 라면이라도 사 올게. 잠깐만 기다려." 성훈이 나간 동안 재호는 화실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벽에 붙은 그림 속에는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어둠 속에 귀가하는 도시빈민이 있었다. 자신을 닮은 그 지친 발걸음을 재호는 한참동안 바라 보았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재호는 몇번을 망설였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재호는 옷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