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일본 사이에서 '마약청정국' 대한민국을 유지하는 비결은? 그리고 궁금한, 해외 3대 마약왕은 누구?

포스트 무적스팸 - 영화 '마약왕' 관련 자료다... 보고 싶은 영화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920634&memberNo=1972495

영화 '마약왕' 개봉 소식을 들으면서 보면서 과거에 정말 대한민국에 마약을 다루는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알게 된 세계의 '마약왕'들...

최근 사건으로는 30년 동안 성형 수술까지 하며 마약을 판매했던 루이스 카를로스 다 로차가 있다. 2017년에 브라질 경찰에 잡힌 그는 콜럼비아와 페루, 볼리비아 등에서 마약을 생산해서 유럽과 미국, 브라질 등에 파는 조직이 있었고, 그의 재산은 무려 1억 달라가 넘었다. 우리 돈으로는 1000억이 넘는 규모다.

그런데 이 보다 더 한 '마약왕'들이 있었다.

성형으로 얼굴 고치며 '30년 도피' 마약왕 검거

해외에서 유명한?! '마약왕'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마약 밀매를 비롯한 각종 범죄로 악명을 떨친 세 명의 '마약왕'은 바로 호아킨 구스만, 쿤사, 파블로 에스코바르다.

해외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쿤사, 파블로 에스코바르

구스만은 멕시코와 미국·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마약 밀매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포브스에서는 2009년 구스만을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자산 규모가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2010년에는 세계 10대 수배자 가운데 그가 오사마 빈 라덴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던 인물이다.

또 한 명, 정부군 장교로 근무했던 마약왕 쿤사는 세계최대 마약산지로 악명 높은 미얀마와 태국,라오스 접경의 골든트라이앵글(황금 삼각지)에서 마약을 제조해 전세계에 공급해온 인물이다. 그는 미얀마 북부전역에 지도자로 떠올라 1만여명의 몽타이군(MTA)을 거느리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 인물이다. 93년에는 미얀마로 부터 샨주의 독립을 선포하고 직접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한 인물이다. 2007년에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미국과의 마약전쟁을 일으켰던 에스코바르가 있다. 자신의 고향에서는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현금 다발을 뿌리며 주민들을 포섭했고, 콜롬비아 당국의 검사와 판사들마저 에스코바르에게 매수당해 수차례에 걸친 기소에도 그의 혐의는 언제나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되곤 했고, 교도수에 들어갔어도 그 안에서 수영장, 볼링장 등 누릴 수 있던 것들을 다 누리고 살았지만, 탈옥 후 고향 뒷골목에서 사살되었다.

'마약왕' 에스코바르에 대한 실화를 담은 영화 '에스코바르'





'에스코바르' 메인 예고편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마약에 대한 사건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마약에 대한 이슈가 많은 동남아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마약청정국'이 되어 유지되고 있을지 그것도 너무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는 일본의 영향으로 마약에 대한 밀매, 제조 등의 문제들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계속 마약과의 전쟁이 선포되어 제조 및 유포하는 범죄조직과의 전쟁이 선포되었었다.


'한일 계열화한 마약범죄'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히로뽕 한국밀조단 두목 검거로 들어난 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범정이 마약 제조기술을 국내 도입해서 일본폭력단 교사로 귀국해 관광객이나 연예단원 등 중간책을 통해서 반출했다고 조사한 내용이다. 히로뽕 제조기술을 들여온 주범이 "히로뽕제조 및 암매조직은 순전히 일본 조직폭력단의 자금과 원료 지원에 따라 조종되고 있다"고 전했었다.

그리고, 그 후 국내 마약 밀조 활성화 및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마약 밀조했고, 70~80년대 마약 오명국이라 할 만큼 마약의 제조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70년대에는 계속적인 마약 밀조단의 구속, 검거, 전쟁 등의 기사들이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그리고  나오는 마약 수사에 대한 이슈와 검거 기사들이 있었다.

마약 관련 기사들
1970.8: 麻藥(마약)밀조단17명拘束(구속) - 매일경제
1970.8: 億臺(억대)마약密輸(밀수) - 동아일보
1972.6: 대규모麻薬密造團(마약밀조단) 적발 - 매일경제
1980.3: 金昌淳(김창순)수배 히로뽕 密造(밀조) 배후엔 保社部(보사부) 麻藥(마약)감시係長(계장) - 경향신문
1980.8: 大檢(대검)특수부 麻藥(마약)사범 164명 掃蕩(소탕) - 경향신문
 
자료제공: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렇게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대대적인 단속과 대검찰청 마약과 신설 등으로 마약사범과 마약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신문에 이 정도로 나올 정도면, 얼마나 대대적인 검거가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마약청정국이 된 우리나라는 그 때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마약 퇴치운동본부 마약류폐해 알리미 - 마약류 정보 홈페이지



'한국마약 퇴치운동본부 마약류폐해 알리미' 사이트에서는 마약류폐해, 마약류 정보, 국내외 동향, 마약류 뉴스, 예방 방법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이 되기까지의 각 분야별 노력에 대한 정보도 담고 있다.

앞에서 봤지만, 우리나라가 '마약청정지역'으로 되기 까지는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1965년 메사돈 파동이 일어나면서 서울지검 등에 마약전담반을 설치 운영하였다.

그 후로 마약류 남용이 확산되면서 1989년 2월 검찰청법을 개정하여 보건복지부의 마약감시반을 검찰공무원으로 이관 받았다. 그러면서 대검찰청 강력부에 마약과를 신설, 12개 본청과 3개 지청에 마약수사반을 신설하는 등 전문적이고 강력한 단속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공간에서 원천적인 차단을 위해서 1988년 6월 김포공항내에 마약수사분실을 설치하였고, 1992년 6월에는 김해국제공항과 부산항만에, 1995년 인천항만에 마약수사분실을 설치하여 원천적으로 마약류의 반입이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을 세계에 알렸다.

1995년 10월 1일 마약수사직렬을 신설하는 등의 검찰청법을 개정하여 마약전문수사인력을 대폭 증강하고, 1996년 12월 9일 강력부가 설치된 6개 지검에 '마약류사범 검찰 ·세관 합동수사반'을 편성,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에 대처하고 있다.

영화 '마약왕' 티저포스터


마약퇴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마약은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배포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양한 해외의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마약왕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과거 기사를 기준으로 보면, 과거에 히로뽕은 KG 당 2억! 과거의 2억은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100배 가치로 현재 가치로는 200억 정도 된다. 당시 검거된 마약제조자들은 히로뽕을 20KG 까지 가지고 있기도 했다고 하니 이는 4000억원??!!! 마약제조자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마약을 다루는 이의 경제적인 능력은 거의 왕과 같았을 것 이다. 그러니 '마약왕'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겠다.

이런 사실적인 '마약왕'의 이야기가 송강호 주연의 우리 영화로 나온다. 좀 떨어진 해외의 마약 사건이나 영화보다, 직접 우리에게 와 닿는 우리나라의 마약사건이 모티브라 더 기대가 되는 영화 '마약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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