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를 하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지

진정한 격려란 무엇일까?

2014년 2월 12일 수요 신우회에서 박이희 목사님이 '격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주실 때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말씀은 디모데후서 1장 15절~18절 말씀.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16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18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우리가 누군가를 '격려한다'는 것은 용기를 주고, 의욕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격려'라는 것은 용기가 없고, 의욕이 없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될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격려하는 사람은 지금 힘든 상황에 있다는 것일거고.

힘들다는 건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서 배제 당하고, 무시당하고, 누가 봐도 어려움을 당하는 순간일 거다. 그리고 주변에 보는 누군가도 도와주지 않고 있는 상황일거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그런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위해 격려할 수 있을까? 자주 찾아가서 격려할 수 있을까? 과연 그렇게 격려할 수 있을까?

박이희 목사님은 직접 찾아가서 만나며 격려하는 것이 진정한 격려라고 하셨다. 발품을 팔면서 하는 것이 진정한 격려란 생각이 들었다. 진정 격려를 하고 싶다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비단 격려 뿐 아닐거다.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하고 멀어서, 바빠서 못만나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주변에 격려가 필요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 찾아보고, 또 찾아가야겠다.


PS. "단체 문자 받는 거 좋아하는 분 있나요?"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단체 문자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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