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가뒀던 유리를 깨고 나와라 ‘크래쉬(Crash, 2004)’



사랑과 관심을 얻지 못하면 죽어버리는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유츠프라카치아 인데요.



결벽증이 강한 식물로 알려진 유츠프라카치아는 누군가 아니면 지나가는 생물체가 조금이라도 몸체를 건드리면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엔 죽게 됩니다.

결벽증이 강해서 누구도 접근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던 이 식물은 얼마 뒤 죽는 이유가 건드려서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건드렸던 그 사람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건드려주어야만 살아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건드렸던 이가 적인 줄 알았지만, 그 식물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유츠프라카치아는 결백해서가 아니라 건드렸던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면 고독함에 몸부림치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았던 한 사람이 그런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면 더욱더 고독함을 느끼게 되는 인간의 삶을 닮은 식물, 유츠프라카치아가 떠오르는 영화 ‘크래쉬’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크래쉬’를 일단 떠올리면, 인종간의 문제를 표면위로 표출했다는 찬사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됩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이기도 하기에 그리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각본을 썼던 폴 해기스의 감독 데뷔작품이기도 해 감동을 주는 것에 있어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인종간 계급간의 갈등을 담고 있다는 표면적인 공치사 외에 영화 ‘크래쉬’에는 거창한 그런 문제 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친분 관계, 혹은 적대 관계에 대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편견과 오해, 그리고 유츠프라카치아 처럼 한번의 관심 후 무관심에 죽어갈 수도 있는 인간과 계속적인 관심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내에서 자동차를 강탈당한 뒤 더욱더 삶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는 백인 부인과 자신의 출마를 위해 인종차별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를 펼치는 백인 남편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차를 강탈하지도 않았지만, 비슷한 차를 타고 가던 사이 좋은 중산층 흑인 부부는 흑인을 싫어하는 경찰에 의해 검문 중 성추행과 같은 조사를 아내가 받게 되면서, 그 것을 그냥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던 남편에 대한 실망감에 서로 원망하며 함께 하길 거부하게 됩니다.

이라크인으로 오해 받는 이란인은 상점의 안전을 위해 권총을 사서 지니게 되고, 그 상점의 열쇠를 고쳐준 선량한 멕시칸 자물쇠공은 백인 부인의 집의 자물쇠도 고쳐주지만, 외모에 대한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리의 2인조 흑인 강도를 찾는 백인 경찰관은 아버지의 병의 치료문제로 흑인에 대한 앙심을 품게 됩니다. 그런 경찰관을 경계한 또 다른 경찰관은 흑인을 경시하는 그를 피해 다른 파트너를 구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흑인이면서 흑인에 대한 차별을 무의식 중에 품고 있는 수사관은 동생의 안부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일에서 손해를 감수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표현조차 하지 못합니다.

36시간 동안 15여명이 넘는 주인공들이 서로 얽히고 얽힌 이야기를 펼쳐놓은 영화 ‘크래쉬’는 시리아나의 개별 4개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그런 큰 그림을 연상케도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에서도 다른 차별적인 이야기와 화해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단지 영화의 스타일이 굉장히 미국적인 점이 좀 걸리는데요. 처음에 좋았던 관계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좋지 않았던 관계가 특정일로 인해 급속히 이해되는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하면서 인간 관계의 예상치 못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LA에서는 아무도 서로를 건드리지 않아. 모두 금속과 유리 안에 갇혀 있지”라는 대사가 인간은 누군가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그 관심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반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츠프라카치아가 살기 위해 기다리는 지속적인 관심은 유리 안에 숨어서는 절대 만날 수도 줄 수도 없습니다. 자기를 가둬뒀던 유리를 깨고 나와 누군가를 건드리기도 하며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바로 인종과 계급의 차별을 넘어 인간의 삶을 신명나게 하는 일이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언제나 필요로 하지만, 자신이 던진 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할 때 오는 실망과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스스로를 유리 안에 갇히고자 하는 사람들.

유츠프라카치아를 떠올리며, 어디선가 누군가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 자신이 먼저 자신을 가둬두었던 유리를 깨고 누군가에게 한걸음 다가가는 계기를 만들길 바랍니다.

Ps. 저예산 영화인 ‘크래쉬’는 할리우드급 스타들이 거의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영화이기도 한데요. 샌드라 블록을 포함한 배우들이 자신의 명성의 유리를 깨고 좋은 작품을 위해 자신을 던졌다는 사실이 더욱더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배우들도 이런 작품이라면 그렇게 하겠죠? 이런 작품이 나오길 고대해봅니다.


 참, 딸와 아빠(멕시칸 열쇠공)가 포옹하고 있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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