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아더(King Arthur, 2004)' 언제나 삶은 전쟁터다


드라마나 소설, 혹은 영화 등이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때 보는 관객들은 전율을 느낍니다. 뭐 쉽게 영웅이야기들에 감동을 느낍니다. 너무 평범한 교과서 형식의 구성이라 “뭐 무슨 영화와 똑같네…”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감동을 느끼는 건 사실입니다.

비평가들은 어쩔 수 없이 어디를 표절했고, 또 너무 단순한 구조라 작품성이 떨어진다 등의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는 위치이기에 간혹 특별한 영화를 너무 평범함 속에 가두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영화 같았던 것이 ‘킹 아더’. (영화 속에 잘 들어보면 ‘킹 아서’라 부르기도 해서.. ^^:)


아더왕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들 알고 계시겠지만, 전쟁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죽는게 더 나은 시대라고 할만큼 전쟁이 난무하고 있을 5세기 로마제국의 주변, 사마시아 기사라고 불리는 아더와 원탁의 기사들은 어디를 가든 승리하고 돌아옵니다. 그러다 맡게 되는 임무.



그 임무로 인해 아더와 원탁의 기사들은 자신들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을 한번 더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통해 알게된 것은 더 이상 그들이 상상하던 세계가 아니라 부패한 세상만이 남아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신념을 가지고 지키고, 아끼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믿던 사람에게 배신 당하는 경우나 믿던 신념이 무너져내린다는 것은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때 이런 말이 생각났습니다.

뭐, 도의 경지에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겠지만, “환경에 지배당하지 말고, 환경을 지배하고 살아야 한다.”

시시때때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밖의 환경에 자신이 그 상황에 따라 기뻤다 슬펐다 하게 된다면, 정말 끝없는 방황과 실망과 허무를 느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더가 결국 자기 자신의 자유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다시 허무를 의지로 다잡는 순간 느꼈던 전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킹 아더’를 본지가 오래 되었는데, 이카루스님의 글도 있었고 또 언젠가 써야지 했던 영화라 몇자 남깁니다.

영화 속에서는 남자들만 나오지만, ‘러브액츄얼리’에서 남편의 친구에게 사랑받던 여인 나이틀리가 기네비어 역을 맡아서 간혹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마지막 미션을 받고 떠나려다 싸우는 기사들을 보고 “분노는 싸움터에서 터뜨려라”라고 말하던 아더의 말이 기억납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전쟁터입니다. 그런 전쟁터에서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자유를 얻기 위해

다른 곳에서 분출하려고 했던 분노를 모아 투쟁할 수 있는 힘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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